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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Alltag & Spiese

어떻게 그렇게까지 믿었을까

단영 檀榮 2017. 6. 17. 01:33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던 본인의 자유의사가 존중되는 편이에요. 몇가지 경우를 제외하면요. 그 몇가지 중에 들어가는 것들 중에 가장 음.. 대표적(?)으로 언급할 만한 것이 범죄이죠. 그리고 아마 그 다음으로 언급할 만한 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일거에요. 둘 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기도 하고, 제도적으로도 제한을 받아요. 다른사람에게도 피해를 끼치고요. 범죄는 확실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자살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이니 다른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주냐고 할 지도 몰라요. 음... 피해를 준다 안준다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이 주제를 가져온 건 아니에요. 아직도 생각 정리가 잘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치만 오늘, 오늘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최근에 자고있을때 부재중 연락이 와있었어요. 되게, 불길했어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지인이 뭐랄까, 약간 정서적으로 불안하다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을 가진 사람이라. 평소에는 괜찮아보이는데, 아니 사실 근처에 사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 보이는 거겠죠. 사실 거리상으로 멀리 살면 그 사람이 많이 힘들어서 연락할때에야 비로소 힘들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이 친구가 몇년 전에 감자탕집에서,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있어요. 자기가 진짜 친했던 친구가 군에서 총기로 자살했단 얘기를 했었죠. 제 할머니가 08년에 암으로 돌아가셨고, 그 해에 대학 동기의 아버지도 불운하게 세상을 떠나셨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의 장례는 겪어보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나이 또래에, 불운의 사고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떠난 사람은 없었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그렇게 큰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뭐라 말을 해줘야할지 무슨 말이 위로가 될지 그런 걸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많이 힘들겠다고, 술이나 한 잔 따라줬었어요.


그리고 그냥저냥 잘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원래도 낯을 많이 가리는 친구긴 했는데, 최근에 신경을 쓰게 된 건 2년 전이에요. 이 친구를 알게된 게 5-6년전 인터넷을 통해서였는데, 2년 전 어느날 전화로 자기가 사라지면 어떨 거 같냐 그런 질문을 했거든요. 아, 그때 술 많이 먹었었어요. 펑펑 울면서 너 그러지말라고 그래도 사는 게 낫다고 하는데 살아보라고, 지금 이유가 없다면 살다가 살아야하는 이유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할 거라고 그랬습니다. 울어버려서 당황했다고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나는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고, 근데 울어버려서...


그 후엔 종종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했습니다. 그냥 친구 만나면 하는 그런 일들이 자기는 힘들 때 힘이 된다고 했어요. 근처에 사는 저랑 친한 분이랑, 이친구랑, 저랑 (그분하고 이친구도 나름 친한 편이라... 저 때문에 서로 만나서 친해지긴 했는데, 그나마 별로 낯을 안가리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셋이 만나서 가끔  밥도 먹고 놀러도 가자고 하고 그랬었어요. 2017년 5월 중순까지요. 마지막으로 본 건 4월이고요. 주로 그 친구가 연락을 했죠. 사실 만날 때 말고, 핸드폰으로 연락이 올 때는 힘들다고만 하는 친구라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했던 게 사실이었어요. 저는 자꾸 우울해지려는 제 멘탈 케어하는데 항상 에너지를 쏟고 있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의 우울함까지 전부 케어하기는 좀 힘들거든요. 한 명이면 모르겠는데 가끔씩 힘들다고 연락오는 사람이 그친구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친구는 그런 연락이 좀 자주 있던 편이었어요. 그렇다고 그걸 그 친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그렇지만 은연중에 느꼈으려나요.


그 불길한 연락이 왔던 날은 자고있었거든요.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를 해봤지만 전원이 꺼져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뭔가 사단이 난 건 알았지만.. 뭐랄까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도 했고, 그게 썩 현실로 와닿지 않기도 했습니다. 며칠뒤에 혹시나 싶어 다시 전화를 해봤지만 착신이 안되는 상태로 전화가 변경되어있었어요. 현실감이 없어서 멍때리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그 친구 생각을 하면 답답해서 토할거같고 그런 시간들이 좀 지나갔죠.


경찰에 연락을 해볼까 생각을 안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나는 그냥 단순히 그 친구의 친구도 아니고(저보다 한 살 어렸습니다) 애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그냥 애매한 사람이었으니까, 말해봤자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리고 경찰을 그렇게 믿지도 않거든요. 겪은게 있으니까.


1년 전에 같은 건물 내에 사람이 울고불고 싸우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깨지는 소리가 자주 나서 벼르고 있다가 또 그런 소리가 들리는 날 경찰에 가정폭력 신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출동해놓고 그 주소를 제가 사는 곳 복도에서 다시 전화를 저한테 해서 묻지를 않나(복도는 소리가 울리는데 거기서 전화하면 경찰관 목소리 다 울려서 방 안까지 들리니까, 최소한 건물 내에서 신고가 들어간 건 알게되죠), 그 집에서 경찰관이 들어오는걸 거부해서 집안까지는 확인못한건 어쩔수없다 하지만, 그냥 현관 열고 신고가 들어왔다 뭐 그런 얘기나 하고 돌아가더군요. 그러는 찰나에 그 옆집에서 남자가 나와서 경찰관한테 누가 신고했냐고 따지고 복도에서 누가 신고했냐고 소리를 질러댔죠. 저는 그날 괜히 신고했다, 정말 괜히 신고했다고 무슨 일이 있던지 내가 신고를 하면 안됐는데 나한테 찾아오면 어쩌지 하면서 바들바들 떨면서 지냈습니다. 그 이후 며칠간은 밖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1년 후에 그 집은 또 싸우고, 여자는 남자한테 맞았고, 그리고 여자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그 이후에 남자는 아예 거처를 옮겼는지 더 이상 물건이 깨지거나 그런 소린 나지 않아요. 결국 이렇게 될 것.... 1년 전에 해결 했으면 이번에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그 때 그따위로 해놓고나서 한달쯤 지나서 나한테 전화해서 만족도 조사했죠.


그럼에도 결국 이런 걸 물을 데가 경찰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그친구 주소를 잘 몰랐어요. 누가 지인의 주소를 외우고 사나요.. 업무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때 그때 물어보죠 보통은. 그래서 주소를 모른다 했더니 경찰서 민원실에선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이걸 이제서야 가져오냐 혹시모르니 112에 연락해보라, 112에선 주소를 모르면 어쩔 수는 없는데 가족이 뭐 조치를 하지 않았겠냐 일단 제가 사는 주소지의 관할 지구대에 가봐라, 지구대에선 주소도 모르고 가족도 아닌데 개인정보 보호법때문에 자기들도 뭐 어쩔 수 없다, 다시 112 전화해서 이렇게 말해봐라....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집에와서 주소 찾아내서 전화했더니 "아깐 모른다고 했지않냐" .....그래요, 그렇게 열심히 저를 여기저기 내돌리시기에, 그래서 집에가서 열심히 찾았죠. 그래서 주소 찾아서 신고했던거죠. 혹시라도 살아있다면, 이렇게 신고를 한 나한테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 반전같은 건 없었습니다. 경찰쪽에서 연락이 왔던 시간을 물어봤었어요. 그것 말고도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도 이것저것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시간이 지나고나서 나중에 연락왔을 때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사망시각을 봤을 때, 그 때 만약 깨어있어서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신고를 했을 땐 이미 늦었을거라고. 경찰은 믿지 못하면서 이 말은 믿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나한테 그런걸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도 없을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미묘하게 위안이 되었어요. 그 전까진, 실제로 그 소식을 공식적으로 접하기 전까진, 그날 바로 전화를 하지 못한 탓인거같고 그래서 생각만 하면 토할거같고 내가 내정신이 아니고 그랬으니까요.


아직도 알 수 없어요. 왜 마지막..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에 연락을 했는지. 나한텐 아무런 영향이 없을거라고 생각한건지. 있을거라고 생각했대도 못된거고... 전에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곤 없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 만큼 자기도 모르는 것 투성이였을텐데 뭘 가지고 나를 믿었던 걸까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정도의 위안이 되었던건지.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좀 더 사정을 물어볼 걸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래봤자 힘들다는 말 외에 자세한 설명은 안하던 애였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말이 정말로 잔인하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유가족 연락처를 아는 것도 아니니 장례식이고 뭐고 갈 수도 없었어요. 뭐랄까 씁쓸하더라고요. 지금도 그냥, 그냥 그래요. 그래서 주변에 되도록 티 안내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 일을 아는 사람도 두어명 정도 뿐이고요. 최근에는 일부러 더 밝게 지내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아마 평생 상처같은 걸로 남을 거에요. 흔적이 다소 희미해 질 수는 있어도 잊어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마 언젠가 제가 죽는 순간까지도 그친구가 저를 왜 그렇게까지 믿었는지 저는 모를거예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영영 모르겠죠. 뭐랄까 정말.... 3주 가까이 지났는데 아직도 복잡하기만 하네요. 생일도 기억 못하는데 기일은 기억하게 되었네요. 30일.


저보고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라더니, 본인은 그렇게 떠날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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